돼지 한 마리가 라멘 한 그릇으로 흩어지는 지도, 뼈·살·지방·부속이 갈리는 자리

라멘 한 그릇을 채우는 뽀얀 돈코츠 국물, 부드러운 차슈, 고소한 기름층은 사실 돼지 한 마리가 네 갈래로 흩어진 결과입니다. 단단한 뼈는 어쩌다 국물이 되고, 쫀득한 삼겹살은 왜 차슈로 가는지, 남은 부속 고기들은 후쿠오카 모츠나베로 어떻게 변신하는지 부위별로 재미있게 짚어봤습니다.

문사장 · 2026-08-19 · 15분 분량

돼지 한 마리가 라멘 한 그릇으로 흩어지는 지도, 뼈·살·지방·부속이 갈리는 자리

한 줄 요약 정육점에서 흔히 사는 살코기는 돼지 한 마리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라멘집 주방에서 뼈는 뽀얀 돈코츠 국물로, 큼직한 삼겹살과 목살은 먹음직스러운 차슈로, 넘치는 지방은 고소한 향미유로 알뜰하게 쓰입니다. 쫄깃한 내장과 부속 부위 역시 모츠나베 같은 지역 요리의 주인공이 되죠. 각 부위의 운명은 결국 그 부위가 품고 있는 성질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뉩니다.

우리가 아는 '고기'는 돼지 한 마리의 일부일 뿐입니다

돼지를 정형하고 나면 살코기 말고도 뼈, 지방, 내장, 가죽 등 어마어마한 양의 부산물이 나옵니다. 라멘은 이 중 뼈와 지방을 국물과 향미유로 훌륭하게 탈바꿈시키는 요리입니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해체해 보면, 우리가 흔히 구워 먹거나 볶아 먹는 살코기 외에도 뼈, 뭉친 지방, 각종 내장, 가죽 같은 낯선 부위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미국 농무부 경제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조금 더 와닿습니다. 손질이 끝난 도체(고기 몸통)에 들어가지 못하고 떼어낸 내장, 가죽, 피, 자투리 지방 같은 부산물은 살아있던 돼지 무게의 무려 30%를 차지합니다. 참고로 소는 부산물 비중이 44%에 달하죠.1 식탁에 오르는 정육 말고도 어마어마한 양의 뒷고기와 부속들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많은 부위가 전부 쓰레기통으로 가는 건 절대 아닙니다. 세계로 수출되는 돼지고기 물량의 35% 이상이 바로 이 부산물들이며,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쫄깃하고 진한 맛의 내장 수요가 엄청납니다.1 흔히 아는 살코기가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훌륭한 식재료로 사랑받고 있죠.

돼지 도체를 살코기·뼈·지방·부속 네 부위군으로 나눈 구조 지도와 부산물이 생체중 약 30%임을 보여 주는 라벨

라멘 역시 이런 자투리 부위들의 성질을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 요리입니다. 앙상한 뼈에서는 진득한 국물을 뽑아내고, 뭉텅이 지방은 국물의 농도와 향을 묵직하게 끌어올리는 데 씁니다. 살코기는 짭조름한 차슈가 되어 면 위에 오르고, 일부 내장과 부속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술안주나 전골 재료로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돈코츠(豚骨)'라는 이름부터가 이런 돼지의 쓰임새를 곧바로 보여줍니다. 돈코츠는 글자 그대로 '돼지 뼈'를 뜻하며, 돈코츠 라멘은 돼지 뼈를 푹 삶아 뽀얗게 우려낸 국물로 만든 라멘이죠.2

그렇다면 돼지의 그 수많은 부위는 라멘 한 그릇 안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들을 맡고 있을까요?

단단한 뼈가 진득한 국물로 녹아내리기까지

뼈와 연골에 꽉 들어찬 콜라겐은 펄펄 끓이면 젤라틴으로 스르르 녹아 국물에 묵직한 질감을 줍니다. 뼛속 골수와 지방은 물과 섞이며 돈코츠 특유의 우윳빛 뽀얀 색을 만들어냅니다.

돈코츠 국물이 맹물처럼 맑지 않고 우유처럼 뽀얀 이유는 뼛속에 숨어 있던 콜라겐과 골수, 지방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콜라겐은 뼈와 연골 같은 결합조직을 엮어주는 핵심 단백질입니다. 평소엔 아주 단단하게 얽혀 있어 물에 잘 녹지 않지만, 뜨거운 열을 끈질기게 가하면 얽힌 구조가 스르르 풀리기 시작합니다. 학계에 보고된 콜라겐의 변성 온도는 대략 50~70℃ 사이에 걸쳐 있죠.3

이 상태로 솥단지에서 오랫동안 펄펄 끓여대면 단단했던 콜라겐이 끈적한 젤라틴으로 변해 국물 속으로 풀려 나옵니다. 이 젤라틴 덕분에 입술이 쩍쩍 달라붙을 만큼 매끄럽고 묵직한 질감이 완성됩니다. 푹 곤 뼈 국물을 식혔을 때 젤리처럼 탱글탱글하게 굳어버리는 것도 바로 이 젤라틴의 마법입니다.4 열이 식으면서 풀렸던 단백질 사슬들이 다시 자기들끼리 엉겨 붙기 때문이죠.5

돈코츠 특유의 뽀얀 색감에는 뼛속 골수와 지방도 단단히 한몫을 합니다.

돼지 뼈를 강한 불에서 거세게 끓이면, 뿜어져 나온 지방이 아주 잘게 쪼개지며 물과 고르게 섞여 들어갑니다. 유성 매직과 물이 섞이듯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되는 이 현상을 '유화'라고 부릅니다. 유화된 미세한 지방 입자들이 빛을 튕겨내면서 국물이 마치 뽀얀 우유처럼 보이게 되는 겁니다.2

그래서 똑같은 뼈를 써도 약한 불로 조용히 우리면 비교적 맑은 칭탕 국물이 나오고, 강한 불로 맹렬하게 끓여대면 유화가 팍팍 일어나 뽀얀 백탕(파이탄) 국물이 완성됩니다.

물론 뼈라고 다 똑같은 역할을 하는 건 아닙니다.

족발 쪽은 관절과 가죽, 힘줄이 많아 쫀득한 콜라겐 덩어리입니다. 이 부위를 넉넉히 넣으면 국물의 끈적한 점도와 질감이 확 살아납니다.6 반면 허벅지에 있는 굵직한 대퇴골 같은 뼈에는 골수와 눅진한 지방이 듬뿍 들어차 있죠.

족발이 국물의 쫀득함을 책임진다면, 다리뼈는 골수와 지방을 풀어 농도와 진한 풍미를 얹어주는 셈입니다. 실제 라멘집 주방에서는 한 가지 뼈만 쓰지 않고 여러 종류의 뼈를 최적의 비율로 섞어 셰프가 원하는 맛과 질감을 빚어냅니다.

족·다리뼈·등뼈·두골이 각각 콜라겐·골수·감칠맛·진한맛으로 국물에 기여하는 원리 다이어그램

뼈 부위 가득 품고 있는 성분 국물에서 맡는 임무
다리 족발 콜라겐 입에 착 감기는 점도와 묵직한 질감
다리뼈·대퇴골 골수·지방 우윳빛 뽀얀 색과 진득한 풍미
등뼈 살코기·연골 은은한 감칠맛과 국물의 뼈대
두골(머리뼈) 지방 야성적이고 깊은 풍미 보강

살코기가 널렸는데도 굳이 뼈를 국물의 핵심으로 삼는 이유는, 살코기만 끓여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젤라틴과 골수, 풍부한 지방의 맛이 뼈에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삼겹살과 목살, 차슈로 다시 태어나다

삼겹살과 목살은 살코기와 지방, 결합조직이 황금 비율로 섞여 있어 오랜 시간 푹 조려내면 입에서 살살 녹는 식감을 자랑합니다. 반면 지방이 없는 등심은 너무 오래 익히면 금세 퍽퍽해지죠.

큼직한 살코기들은 주로 라멘의 화룡점정인 차슈나 토핑으로 쓰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사랑받는 차슈 부위는 단연 삼겹살과 목살입니다. 두 부위 모두 지방과 질긴 결합조직이 고기 사이에 촘촘히 섞여 있어서, 달콤짭짤한 간장에 푹 고아내듯 오래 조리했을 때 부들부들하게 풀리는 식감이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돈가스에 자주 쓰는 등심은 돼지 부위 중에서도 유독 지방이 적은 쪽에 속합니다. 미국 노스다코타주립대의 육류 자료를 보면, 이름에 '로인(loin)'이 들어가는 등심이나 안심을 대표적인 저지방 다이어트 부위로 꼽습니다. 특히 안심은 껍질을 싹 벗겨낸 닭가슴살과 견줄 정도로 기름기가 없습니다.7

이렇게 지방이 쏙 빠진 고기를 뜨거운 국물에 오래 익히면 수분이 쫙 빠져나가면서 퍽퍽한 고무 씹는 느낌이 나기 십상입니다. 결합조직도 별로 없어서, 아무리 오래 삶는다고 삼겹살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죠.

반대로 어깨나 뒷다리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억센 부위에는 질긴 결합조직과 콜라겐이 아주 풍부합니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뒷다리 쪽 근육의 총콜라겐 함량(6.68mg/g)이 등심 근육(4.95mg/g)보다 훌쩍 높게 나왔습니다.8

콜라겐이 잔뜩 낀 부위는 살짝만 구워 먹으면 질겨서 턱이 아플 지경입니다. 하지만 육수를 머금은 채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오랫동안 조려내면 질긴 콜라겐이 젤라틴으로 싹 풀리면서 믿기 힘들 만큼 야들야들해집니다.

삼겹·목살·등심·사태의 단면을 나란히 비교하고 각자 가는 자리를 표시한 부위별 비교 다이어그램

부위 특징 라멘에서 활약하는 무대
삼겹살 살과 꼬소한 지방이 층층이 교차 입에서 스르르 녹는 진한 조림 차슈
목살 붉은 살코기 사이사이 적당한 마블링 씹는 맛과 지방의 고소함이 조화로운 차슈
등심 지방이 쏙 빠진 순수한 살코기 수비드로 익혀내는 담백하고 세련된 토핑
사태·앞다리 질긴 결합조직이 가득함 시간을 들여 푹 고아내거나 육수용 고기로 투입

같은 붉은 살코기라도 품고 있는 결합조직의 구조에 따라 씹는 맛은 천차만별입니다. 특히 불에 잘 녹지 않는 억센 콜라겐이 많을수록 고기는 뻣뻣하게 느껴집니다.9

삼겹살이 수많은 라멘집의 간판 차슈로 사랑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푹 삶는 동안 지방은 부드럽게 녹아들고 질긴 결합조직은 젤라틴으로 변신해 극강의 식감을 내니까요. 목살은 삼겹살의 느끼함이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고기 씹는 맛은 살리면서도 적당한 꼬소함을 안겨주는 훌륭한 차슈 재료입니다.

배와 등에 두껍게 쌓인 지방은 향긋한 향미유가 됩니다

돼지 등과 배에 뭉친 하얀 지방 덩어리를 은근한 불에 녹여내면 고소한 라드가 됩니다. 이 라드로 묵직한 질감을 내고, 마늘이나 파를 튀겨내듯 끓여 극강의 풍미를 자랑하는 향미유를 만듭니다.

라멘 국물을 유심히 보면 표면에 얇고 반짝이는 기름 막이 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기름의 정체는 돼지 지방을 사르르 녹여 만든 '라드(돼지기름)'일 때가 많습니다.

돼지의 등심을 두껍게 덮고 있는 하얀 지방을 등지방, 삼겹살이 있는 배 쪽에서 걷어낸 지방을 배지방이라고 부릅니다.10 이 뽀얀 지방 덩어리들을 솥에 넣고 열을 가해 맑게 녹여낸 것이 바로 라드입니다.

라드를 국물에 살짝 띄우면 매끄러운 코팅 막이 생겨 입안 가득 진득한 질감이 찹찹 감깁니다. 국물을 덮은 기름 막 덕분에 펄펄 끓는 국물이 빨리 식지 않게 보온병 역할을 해주기도 하죠.

이 맑은 라드에 으깬 마늘, 다진 파, 생강 같은 향신 채소를 넣고 튀기듯 끓여내면 국물의 맛을 확 끌어올리는 '향미유'가 탄생합니다.11 기름이 향긋한 채소 향을 꽉 붙잡고 있다가 손님이 면을 후루룩 빨아들일 때 입안 구석구석 향을 퍼뜨려 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향미유가 바로 '마유(마늘 기름)'입니다.

마유는 마늘을 진한 갈색이나 아주 새까맣게 변할 때까지 오랜 시간 기름에 튀겨서 만드는 향미유입니다.11 뽀얀 돈코츠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새까만 기름을 보셨다면 그게 바로 마유입니다.

이 마유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 지역 돈코츠 라멘의 상징이나 다름없습니다.12 바짝 구운 마늘 특유의 쌉싸름하면서도 달큰한 향이 다소 느끼할 수 있는 돈코츠 국물의 멱살을 잡고 깊은 풍미의 세계로 끌고 가죠.11

배지방·등지방이 라드로 녹고 마늘로 향을 입혀 마유가 되어 국물 위 기름층으로 뜨는 순서도

향미유를 만들 때 굳이 기름을 쓰는 이유는, 맛과 향을 내는 성분들이 물보다는 기름에 훨씬 찰떡같이 잘 녹아들기 때문입니다. 기름에 향을 입히면 향이 국물 겉돌지 않고 면발과 국물 사이사이에 착착 감기게 됩니다.

라멘 그릇 위의 기름은 덮어놓고 느끼한 불청객이 아니라, 전체적인 맛의 볼륨을 조절하고 식감을 지휘하는 아주 섬세한 조미료에 가깝습니다.

버릴 것 없던 쫄깃한 내장들은 모츠나베의 주인공이 됩니다

곱창, 대창, 위, 간 등 개성 넘치는 부속 부위들은 지역에 따라 전골이나 구이로 맹활약합니다. 후쿠오카 명물 모츠나베는 내장에서 우러나온 진한 맛을 짬뽕면으로 싹싹 긁어먹는 훌륭한 음식입니다.

뼈와 살코기, 두꺼운 지방을 싹 발라내고 남은 각종 내장과 특수부위들도 결코 버려지지 않고 지역마다 다채로운 요리로 태어납니다.

일본에서는 소나 돼지의 내장과 부속 고기를 통틀어 '호르몬' 혹은 '모츠'라고 정겹게 부릅니다.13 심장은 하츠, 간은 레바, 쫄깃한 위는 미노, 창자는 시로 등 각 부위를 부르는 애칭도 다 따로 있죠. 심지어 콩팥, 췌장, 자궁, 식도 같은 생소한 부위들까지 알뜰하게 구워 먹거나 전골에 넣습니다.14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후쿠오카 중심의 규슈 지역에서는 이 부속 고기들을 듬뿍 넣고 끓여 낸 '모츠나베(곱창전골)'가 아주 유명합니다.

모츠나베는 2차 대전 직후 팍팍했던 시절에 생겨난 음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규슈 북부에는 거대한 탄광이 있었는데, 고된 노동을 견뎌야 하는 광부들에겐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고깃국이 절실했습니다. 그때 정육점에서 헐값에 넘기던 소나 돼지의 내장 부위를 얻어다 질긴 부추를 듬뿍 넣고 끓여 먹은 것이 이 모츠나베의 뿌리입니다.15

오늘날의 든든한 모츠나베 냄비 안에는 쫄깃한 소장과 기름진 대장, 탱글한 심장, 오독오독한 위가 푸짐하게 담깁니다. 여기에 달큰한 양배추와 향긋한 부추를 산더미처럼 쌓고, 알싸한 마늘과 매콤한 고춧가루를 팍팍 더해 푹 끓여냅니다.16

내장 사이에 낀 고소한 지방이 끓는 물에 스르르 녹아내리며 채소의 단맛과 엉겨 붙어 기가 막히게 진한 국물을 빚어내죠.

곱창과 채소를 거의 다 건져 먹고 나면, 그 진국이 된 국물에 면이나 밥을 볶아 화려하게 마무리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기분 좋은 마무리 과정을 '시메'라고 부릅니다.15

대개 두툼한 짬뽕면을 끓여 쫄깃하게 즐기거나, 밥과 계란을 풀어 고소한 죽을 쒀 먹기도 합니다.17 냄비 하나로 내장 고기의 진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먹는 셈입니다.

곱창·위·간·심장 부속이 후쿠오카 모츠나베 냄비로 들어가고 남은 국물에 면을 마는 시메로 이어지는 순서도

부속 고기들은 각자 식감과 풍미가 확연히 다릅니다. 대장은 하얀 기름을 잔뜩 품어 입에서 스르르 녹아내리고, 위는 아주 단단하고 통통 튕기는 탄력을 자랑하죠. 간은 크리미하고 진한 맛이 특징이고 심장은 쫄깃쫄깃 씹는 재미가 확실합니다.18 창자 부위는 불에 바짝 구우면 겉은 과자처럼 바삭해져 별미로 꼽힙니다.14

이렇듯 부위마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보니 요리법도 덩달아 다양해졌습니다. 촉촉한 전골에 어울리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직화 숯불에 구워 불향을 덧입히거나 달콤 짭조름하게 볶아내는 게 더 맛있는 녀석도 있죠.

이처럼 내장 한 조각 허투루 버리지 않는 문화의 밑바탕에는 일본 특유의 '못타이나이(아깝다, 낭비해선 안 된다)' 정신이 깊게 깔려 있습니다.13

이 다채로운 호르몬(내장) 요리 문화는 100여 년 전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 지방에서 싹을 틔워 규슈 지방으로 넘어가 모츠나베 같은 훌륭한 향토 음식으로 꽃을 피웠다고 전해집니다.19

같은 규슈 땅 안에서도 돼지는 부위별로 각자의 임무를 다합니다. 뼈는 푹 고아져 진득한 돈코츠 라멘 국물로, 부속들은 보글보글 끓는 전골이나 지글지글 구이의 안줏거리로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죠. 여담으로 돈코츠 라멘이 처음 탄생했다고 알려진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에서는 지금도 식당마다 서로 다른 뼈 배합과 끓이는 비법을 뽐내며 치열하게 국물 맛을 다투고 있습니다.20

라멘 한 그릇 속 흩어진 돼지의 임무 교대

뼈는 국물의 뼈대가 되고, 살코기는 차슈와 고명으로 올라갑니다. 하얀 지방은 풍미 넘치는 기름막이 되고, 내장 부속은 지역을 대표하는 전골이나 구이로 알뜰하게 변신합니다.

지금까지 찬찬히 뜯어본 돼지 한 마리의 변신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 뼈는 진국의 바탕이 됩니다. 콜라겐은 국물을 끈적끈적하게 만들어주고, 골수와 지방은 뽀얀 우윳빛 국물과 눅진한 풍미를 터뜨립니다.
  • 살코기는 면을 덮는 차슈로 환생합니다. 삼겹살과 목살은 오랜 시간 푹 삶는 조리법에 착 달라붙고, 기름기 없는 등심은 산뜻한 담백함을 뽐냅니다.
  • 지방은 고소한 라드와 향미유로 재탄생합니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국물에 묵직한 질감을 얹고 파나 마늘 향을 사방에 흩뿌립니다.
  • 부속 고기는 후쿠오카의 든든한 모츠나베나 숯불 호르몬 구이로 지역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줍니다.

이 완벽한 역할 분담은 돼지의 전체 수율(도축 후 얻는 고기 비율)을 살펴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미국 농무부는 돼지 몸통을 크게 등심, 목살, 앞다리, 갈비, 뒷다리, 삼겹살의 여섯 덩어리로 큼직하게 나눠서 가치를 매깁니다.21

하지만 통통하게 살찐 돼지를 잡는다고 그 무게가 고스란히 고기로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피와 내장을 뺀 도체율은 약 70~75% 수준이고, 이걸 다시 뼈째 파는 고기로 다듬으면 74%, 아예 뼈까지 싹 발라낸 순살로 치면 겨우 65% 남짓만 손에 쥐게 됩니다.22

계산법에 따라 숫자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살아있던 돼지의 무게를 100으로 치면 불판에 올릴 수 있는 순살코기는 절반 정도에 그치는 셈이죠. 나머지 절반의 무게는 뼈와 지방 덩어리, 내장, 가죽, 그리고 손질하다 떨어져 나온 자투리 부위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뼈는 국물·살코기는 차슈·지방은 기름층·부속은 냄비로 화살표가 라멘 한 그릇에 모이는 통합 지도 다이어그램

결국 주방장이 어느 부위를 어디에 쓸지는 그 부위가 타고난 성질과 모양새가 스스로 알려줍니다.

뼈는 콜라겐과 뼛골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살코기는 씹을 때 결대로 찢어지는 고기 본연의 맛을 선사하죠. 지방은 모든 맛을 둥글게 감싸며 윤기를 더하고, 내장은 저마다의 독특한 향과 꼬들꼬들한 식감으로 재미를 줍니다.

따끈한 라멘 한 그릇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면, 그건 그저 면과 육수를 대충 섞어 내온 음식이 아닙니다. 돼지라는 식재료가 가진 모든 부위의 매력을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완벽하게 조립해 낸, 아주 영리하고 맛있는 건축물인 셈입니다.

동네마다 식당마다 부위를 다루는 손길은 다릅니다

본문에서 설명한 부위별 역할은 널리 통용되는 큰 틀일 뿐입니다. 어떤 부위를 얼마나 쓰고 어떻게 조리할지는 라멘집 주방장의 솜씨와 동네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은 라멘 업계의 대략적인 모범 답안일 뿐, 무조건 지켜야 하는 법은 아닙니다.

삼겹살의 느끼함이 싫다며 목살로만 큼직하게 차슈를 썰어내는 주방장도 있고, 등심이나 앞다리살을 정교하게 다뤄 예술적인 차슈를 올리는 집도 수두룩합니다. 똑같이 돈코츠 육수를 끓이더라도 어떤 식당은 머리뼈만 잔뜩 넣어 야성적인 향을 뿜어내고, 어떤 식당은 등뼈와 다리뼈를 기가 막히게 섞어 우유보다 부드러운 국물을 뽐내죠.

같은 부위가 가게·지역에 따라 다른 자리로 배정되는 경향의 변주를 보여 주는 비교 다이어그램

돼지의 부위별 비중을 나타내는 숫자들도 마찬가지로 유연합니다.

같은 돼지를 잡아도 뼈째 넘기는 고기 수율은 도체의 74%로 잡히지만, 뼈를 싹 다 발라버리면 65%로 줄어드는 것처럼요.22 처음 살아있을 때 무게를 기준으로 쟀는지, 손질된 고깃덩어리를 기준으로 쟀는지에 따라 수치는 요동칩니다.

나라마다 정육점에서 부위를 나누고 이름 붙이는 방식도 다 다릅니다.23 그러니 본문에 적힌 숫자들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돼지 한 마리가 대략 어떻게 쪼개지는지 감을 잡기 위한 참고용으로 보시는 게 낫습니다.

내장을 얼마나 즐겨 먹는지, 어떤 찌개나 구이에 던져 넣는지도 지역의 식문화와 시장 물가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버려지는 부산물이 엄청나다는 건 만국 공통이지만, 그걸 구워 먹든 끓여 먹든 사료로 쓰든 활용법은 동네마다 다르게 나타나죠.1

이 글은 맛집 비법 레시피라기보다는, 돼지의 여러 부위가 가진 생물학적 성질들이 일본 라멘이나 지역 향토 음식에서 얼마나 재치 있고 맛깔스럽게 꿰맞춰지는지 그 큰 그림을 짚어본 글입니다.

돈코츠 라멘 국물이 무턱대고 뽀얗고 입에 쩍쩍 달라붙는 건 가스불을 오래 켜둬서만은 아닙니다. 주방장이 어떤 뼈와 뭉친 지방을 치밀하게 계산해 골라 넣었는지, 불 조절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그 맛의 방향이 완전히 갈리니까요.

글을 읽으며 돈코츠 특유의 묵직한 국물이 당기신다면, 범계 '우마이식당'에 들러 오랫동안 푹 고아낸 든든한 진짜 뼈 국물을 한번 맛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Footnotes

  1. USDA 경제연구소 — Where's the (Not) Meat? Byproducts From Beef and Pork Production(연구요약) — 부산물이 돼지 생체중의 약 30%(소 약 44%)이며, 돼지고기 수출의 35% 이상이 부산물이고 아시아권 내장 수요가 강하다는 수치. ↩ ↩2 ↩3

  2. Food in Japan — Tonkotsu Ramen: Pork Bone Soup Ramen — 돈코츠가 글자 그대로 돼지 뼈이며, 센 불로 지방이 미세 방울로 부서지고 콜라겐이 이를 붙들어 유화되며 국물이 뽀얘진다는 정의와 원리. ↩ ↩2

  3. PMC — Effect of Heat Level and Expose Time on Denaturation of Collagen Tissues — 콜라겐의 보고된 변성 온도가 대략 50~70℃ 범위에 분포하고, 변성 속도가 온도에 따라 지수적으로 빨라진다는 실측. ↩

  4. PMC — Gelatin from Mechanically Deboned Residue: Texture, Rheology and Structure — 젤라틴이 콜라겐을 가수분해한 형태이며 체온 부근에서 녹는 열가역 젤을 만들고, 콜라겐이 젤라틴의 전구체라는 원리. ↩

  5. PMC — Preparation of Gelatin from Broiler Chicken Stomach Collagen — 가열로 콜라겐 삼중나선이 풀리고 온도가 내려가면 사슬 간 결합 일부가 복원돼 젤이 형성되는 sol–gel 전이 원리. ↩

  6. PMC — Valorization of Feet By-Product: High Qualities of Gelatin from Collagen Extraction — 발류가 콜라겐이 풍부한 부산물로 열가수분해로 젤라틴을 얻으며, 그 젤라틴이 상용 젤라틴에 견줄 만큼 강한 겔 형성능을 낸다는 근거. ↩

  7. NDSU Extension — Now You're Cookin': Lean Pork! — 이름에 'loin'이 들어간 등심·안심이 돼지에서 가장 지방이 적은 부위이며 안심이 껍질 벗긴 닭가슴살에 견줄 저지방이라는 기준. ↩

  8. Oxford Academic, Translational Animal Science — Collagen characteristics affect the texture of pork Longissimus and Biceps femoris — 뒷다리 뒤쪽 근육의 총콜라겐(6.68mg/g)이 등심 근육(4.95mg/g)보다 유의하게 높고, 콜라겐이 많을수록 경도·씹힘성이 커진다는 실측. ↩

  9. PMC, Foods — Characterization of Type I and Type III Collagen in the Intramuscular Connective Tissue — 근육내 결합조직·콜라겐의 양과 용해도가 근육마다 크게 다르고, 용해도가 낮은 콜라겐이 많을수록 질겨진다는 리뷰. ↩

  10. South Dakota State University Extension — Pork Carcass Fabrication: Primal and Retail Cuts — 등지방이 도체 등쪽 등심 위 지방층이고, 리프랫 등 배쪽 지방이 별도로 나온다는 도체 위치 근거. ↩

  11. Myojo USA — Introducing Komiabura: Chiyu, Mayu, Rayu — 향미유(코미아부라)가 라드 등 지방에 재료를 더해 향을 입힌 기름이라는 정의와, 마유가 라드에 마늘을 여러 단계로 튀겨 만든 향미유로 구마모토 라멘의 필수 요소라는 서술. ↩ ↩2 ↩3

  12. SANYO Foods Corp. of America — Black Garlic Oil Tonkotsu — 흑마늘유(마유)가 규슈 구마모토식 돈코츠의 상징 요소이며 마늘과 라드로 만들고 구마모토 라멘 가게들이 국물에 깊이를 더하려 개발했다는 교차 확인. ↩

  13. Food in Japan — Horumon: A Guide to Japanese Offal — 호르몬·모츠가 소·돼지의 내장 부속을 통칭하며, 부속을 쓰는 관행이 낭비를 꺼리는 '못타이나이' 정신과 이어진다는 배경. ↩ ↩2

  14. Japanese Taste — Horumon: Japan's Offal Dining Experience — 하츠(심장)·레바(간)·미노(위)·시로(창자) 등 부위별 명칭과 콩팥·췌장·자궁·식도 등 확장 부속, 부위별 식감 차이. ↩ ↩2

  15. Food in Japan — Motsunabe: Fukuoka's Famous Offal Hot Pot Guide — 모츠나베가 전후 북부 규슈 탄광지대의 궁핍에서 값싼 부속을 부추와 함께 냄비에 넣은 데서 생겼고, 남은 국물에 면을 마는 '시메' 마무리가 있다는 지역·역사 배경. ↩ ↩2

  16. Food in Japan — Motsunabe: Fukuoka's Famous Offal Hot Pot Guide — 냄비에 소·돼지의 소장·대장과 심장·벌집위가 들어가고 양배추·부추와 저민 마늘·고춧가루가 더해진다는 구성. ↩

  17. Food in Japan — Motsunabe: Fukuoka's Famous Offal Hot Pot Guide — 시메에서 두꺼운 짬뽕면으로 남은 국물을 흡수시키는 것이 정통이며 밥·달걀로 죽을 만들기도 한다는 마무리 방식. ↩

  18. LIVE JAPAN — Horumon: Japan's Offal Dishes — 후쿠오카의 모츠나베가 부속을 채소·두부와 끓인 요리이며, 대장은 부드럽고 위는 단단하고 간은 진하다는 부위별 식감 차이. ↩

  19. Japanese Taste — Horumon: Japan's Offal Dining Experience — 호르몬 문화가 약 한 세기 전 간사이에서 시작돼 규슈 후쿠오카에서 모츠나베로 지역 변주가 됐다는 지역성. ↩

  20. VISIT FUKUOKA — A deep look into Tonkotsu Ramen from Hakata, Nagahama, and Kurume — 돈코츠 라멘이 후쿠오카현 향토 음식이며 구루메시가 발상지로 알려져 있고, 현대 가게들이 서로 다른 돼지 부위와 조리법으로 진한 국물을 낸다는 지역 근거. ↩

  21. American Farm Bureau Federation — USDA Pork Carcass Cutout 방법론 — 돼지 도체 컷아웃이 등심·목살·앞다리·갈비·뒷다리·삼겹의 여섯 부위로 구성되고 각 부위의 전형적 비중으로 값을 가중한다는 설명. ↩

  22.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Extension — How much meat should a hog yield? — 돼지 도체율이 약 70~75%이고, 뼈 포함 부위로 약 74%, 순살로 약 65%만 남으며 그 차이가 뼈·지방이라는 수율 수치. ↩ ↩2

  23.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Extension — How much meat should a hog yield? — 프라이멀 비중이 자료·집계 기준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제시되어(등심·뒷다리 각 25%, 삼겹 21% 등) 부위 비중이 기준별 참고값임을 보여 주는 근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