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의 역사와 지역 원형, 지금의 흐름까지 한 그릇으로 읽기

중화소바에서 출발한 라멘이 삿포로 미소·하카타 돈코츠처럼 지역마다 다르게 자리 잡고, 다시 맑은 국물과 아주 진한 국물로 갈라지기까지, 국물과 면과 타레를 하나하나 쉽게 풀어 봤습니다.

우마이식당 · 2026-08-06 · 15분 분량

라멘의 역사와 지역 원형, 지금의 흐름까지 한 그릇으로 읽기

같은 라멘집 카운터에 앉아도 어떤 그릇은 국물이 뽀얗게 올라오고, 어떤 그릇은 바닥의 김이 비칠 만큼 맑게 나옵니다.

뽀얀 국물은 뼈를 센불에 오래 끓이면서 기름과 물이 아주 잘게 섞인 상태입니다. 이렇게 서로 섞이지 않던 기름과 물이 하나처럼 어우러져 하얗게 탁해지는 현상을 유화(乳化)라고 합니다.1

반대로 맑은 국물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우려 탁함을 줄인 국물입니다.2

겉으로 보면 “진한 국물이냐, 맑은 국물이냐” 정도의 취향 차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국물의 탁도, 면의 굵기, 그 위에 올라간 토핑 하나하나에 그 라멘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한 그릇 안에 생각보다 긴 족보가 들어 있는 셈입니다.

한 줄 요약 라멘은 중화소바에서 출발해 지역의 날씨와 재료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갈라졌습니다. 이후 특정 가게의 스타일이 다른 가게로 이어지는 유파가 생겼고, 오늘날에는 맑고 절제된 국물과 극도로 진한 국물이라는 두 방향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국물의 탁도, 면의 가수율, 타레와 토핑을 차례로 살펴보면 그 그릇이 어느 계보에 가까운지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일본식 라멘은 중화소바에서 시작됐습니다

요코하마 중화가의 중국식 국수가 도쿄로 건너가 일본식 국수로 자리 잡았고, 전후 포장마차와 인스턴트 라멘을 거치며 국민 음식으로 퍼졌습니다.

라멘의 뿌리는 메이지 시대 요코하마의 중화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899년 외국인 거류지가 폐지된 뒤 중국인 요리사들이 요코하마 남경정, 지금의 요코하마 중화가에서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팔던 중국식 국수는 당시 남경소바(南京そば)라고 불렸습니다.3

이 국수가 도쿄로 건너가 일본식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으로는 1910년 아사쿠사에 문을 연 라이라이켄(來々軒)이 자주 언급됩니다.

라이라이켄은 돼지뼈와 닭뼈로 낸 국물에 간장 타레를 더해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담백한 국수를 선보였습니다.4

여기서 타레(タレ)는 국물의 간과 방향을 잡는 밑양념입니다. 간장이나 소금을 바탕으로 짠맛과 감칠맛을 더해 만드는데, 어떤 타레를 쓰느냐에 따라 라멘의 성격이 크게 달라집니다.

같은 육수를 써도 타레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라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국물의 중심을 잡는 숨은 실세라고 보면 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 라멘은 암시장과 야타이(屋台), 즉 길거리 포장마차를 통해 서민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 라멘 포장마차를 열었고, 이 흐름이 전문점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5

‘라멘’이라는 이름을 일본 전역에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인스턴트 라멘이었습니다.

1958년 8월 25일, 닛신식품의 안도 모모후쿠가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인 치킨라멘을 출시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붓고 2분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제품이었습니다.6

그전까지 시나소바(支那そば)나 중화소바라고 불리던 국수는 치킨라멘의 성공을 계기로 ‘라멘’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굳어졌습니다.6

1971년에는 세계 최초의 컵면인 컵누들이 등장했습니다.7 라멘이 가게에서 먹는 특별한 음식에서,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일상의 음식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순간이었습니다.

지역의 날씨와 재료가 서로 다른 라멘을 만들었습니다

추운 삿포로에서는 라드로 국물을 덮어 열을 지켰고, 규슈에서는 돼지뼈를 오래 끓여 뽀얀 국물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의 조건이 국물과 면의 성격을 서로 다르게 굳혔습니다.

지역마다 라멘이 다른 모습으로 자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고 겨울이 긴 삿포로에서는 국물이 빨리 식으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삿포로 미소 라멘은 국물 표면을 라드, 즉 돼지기름으로 덮어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듭니다.8

주문이 들어오면 중화 웍에 콩나물과 양배추, 간고기를 볶고 그 위에 국물을 부어 완성합니다. 이런 웍 볶음 방식이 초기 삿포로식 미소 라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9

면은 볶은 채소의 무게와 진한 국물에 눌리지 않도록 탄력이 있는 중간 굵기의 곱슬면을 사용합니다.8

국물은 뜨겁게, 면은 탄탄하게, 채소는 불맛까지 챙기는 구성입니다. 추운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라멘다운 설계입니다.

미소 라멘을 처음 선보인 곳으로는 삿포로의 한 가게가 꼽힙니다. 1955년 무렵 개발된 것으로 전해지며, 정식 메뉴로 올라간 시기는 1961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8

규슈로 내려가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카타 돈코츠 라멘의 중심은 돼지뼈를 오래 끓여 만든 뽀얗고 진한 국물입니다. 센불에서 뼈를 계속 끓이면 지방과 단백질 성분이 물속에 잘게 퍼지며 유화되고, 국물이 하얗게 탁해집니다.10

이 백탁(白濁), 즉 뽀얗게 흐려진 돈코츠 국물은 1947년 구루메의 한 포장마차에서 국물을 불 위에 너무 오래 올려두는 바람에 우연히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11

실수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던 셈입니다.

하카타 라멘의 극세(極細) 스트레이트 면에도 지역의 생활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나가하마 시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빨리 내기 위해 면을 가늘게 뽑았고, 덕분에 삶는 시간이 크게 줄었습니다. 다만 가는 면은 국물 속에서 금세 불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은 양을 담기보다, 먹는 도중 면만 추가하는 카에다마(替え玉) 방식이 생겨났습니다.12

면의 굳기를 세밀하게 주문하는 문화도 이 지역에서 발전했습니다.

단단한 순서대로 하리가네, 바리카타, 카타처럼 주문할 수 있습니다. 바리카타의 바리(ばり)는 하카타 사투리로 ‘아주’라는 뜻의 강조어입니다.13

그러니까 바리카타는 말 그대로 “아주 단단하게”입니다. 면 익힘에도 세부 옵션이 꽤 많은 동네입니다.

기타카타 라멘은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탄력이 강하고 넓적한 곱슬면을 사용하는데, 이를 숙성 다가수면(熟成多加水麺)이라고 부릅니다. 가수율(加水率)은 면 반죽에 넣는 물의 비율을 뜻합니다. 물을 많이 넣은 다가수 면일수록 표면이 매끄럽고 식감이 부드러워집니다.14

국물은 니보시(煮干し), 즉 말린 멸치나 정어리로 낸 육수와 돼지뼈 국물을 바탕으로 한 담백한 쇼유 맛입니다.15

기타카타에는 아침에 라멘을 먹는 아사라(朝ラー) 문화도 뿌리내려 있습니다. 가게들이 이른 아침부터 불을 켜고 준비하면 단골들이 자연스럽게 들르면서 생긴 생활 습관으로 전해집니다.15

누군가에게 아침은 토스트지만, 기타카타에서는 라멘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도쿄의 맑은 쇼유 라멘은 흔히 일본 라멘의 초기 모습을 보여 주는 형태로 꼽힙니다. 앞서 소개한 아사쿠사 라이라이켄의 간장 국수가 도쿄식 라멘의 뿌리로 자주 언급됩니다.4

다만 “도쿄 라멘이 모든 라멘의 최초 형태다”라는 설명은 업계에서 널리 반복되는 이야기에는 가깝지만, 하나의 확정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지역별로 자리 잡은 라멘의 특징을 국물과 면, 구성으로 정리하면 차이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지역 국물 특징
삿포로 미소 미소·돼지뼈, 라드로 봉함 중간 굵기 곱슬면 웍에 볶은 야채, 잘 안 식음8
하카타 돈코츠 뽀얗게 유화된 돼지뼈 백탁 극세 스트레이트 카에다마·면 굳기 주문10
기타카타 니보시·돼지뼈 담백한 쇼유 넓적한 다가수 곱슬면 아침 라멘 문화15
도쿄 쇼유 맑은 청탕 쇼유 중간 굵기 담백한 계열의 뿌리로 꼽힘4

삿포로 미소·하카타 돈코츠·기타카타·도쿄 쇼유 네 지역 라멘 그릇을 나란히 비교한 정물

지역을 넘어 가게의 스타일이 하나의 계보가 됐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지역별 라멘 위에 특정 가게의 스타일이 다른 가게로 이어지는 유파가 생겼습니다. 이에케이와 지로계가 대표적입니다.

지역의 환경이 라멘의 첫 갈래를 만들었다면, 그다음부터는 개별 가게가 새로운 갈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게에서 완성된 스타일이 제자와 독립한 직원, 영향을 받은 다른 가게로 이어지며 하나의 계보를 이루었습니다. 라멘에서 흔히 말하는 ‘계(系)’가 바로 이런 흐름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에케이(家系)입니다.

이에케이는 1974년 요코하마에서 문을 연 요시무라야를 원류로 봅니다. 돼지뼈와 닭뼈를 함께 끓인 국물에 진한 간장 타레와 닭기름을 더한 돈코츠 쇼유가 이 계열의 핵심입니다.16

국물이 강한 만큼 면도 쉽게 밀리지 않는 굵은 스트레이트 면을 사용합니다. 위에는 시금치와 차슈, 김을 올리는 구성이 일반적입니다.17

테이블에 놓인 생강, 마늘, 식초 등을 이용해 손님이 직접 간과 향을 바꾸는 맛 바꾸기(味変) 문화도 이에케이의 특징입니다.17

처음에는 가게가 기본값을 제시하고, 중간부터는 손님이 직접 패치를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지로계(二郎系)는 이에케이와도 전혀 다른 인상을 줍니다.

원류인 라멘지로는 1968년 도쿄 미타에서 시작했습니다. 기름이 넉넉한 돼지뼈 국물에 간장 타레를 더하고, 밀 향이 강한 극태면 위에 콩나물과 양배추를 산더미처럼 올립니다.

여기에 두툼한 차슈까지 얹으면 그릇이 식사라기보다 하나의 구조물처럼 보일 정도입니다.18

지로계에는 콜(コール)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주문 방식이 있습니다. 그릇이 나오기 직전 손님이 야사이, 니닌쿠, 아부라 같은 말을 외쳐 토핑의 양을 정합니다.

야사이는 채소 증량, 니닌쿠는 간마늘, 아부라는 지방 추가를 뜻합니다.18

주문을 받는 순간까지 커스터마이징이 이어지는 셈입니다. 처음 방문하면 조금 긴장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자기 그릇을 직접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요즘 트랜드는 ‘맑게’와 ‘진하게’를 동시에 밀어붙이는 스타일입니다.

한쪽은 맑고 절제된 청탕 쇼유로 돌아가고, 다른 한쪽은 유화 국물과 니보시의 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서로 반대되는 두 방향이 동시에 유행하고있습니다 .

요즘 라멘은 서로 정반대인 두 방향으로 동시에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맑고 절제된 국물을 추구하는 담려계(淡麗系)가 있습니다.

담려계 국물은 약 80℃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재료를 천천히 우려 탁함이 적고 투명한 청탕(清湯)으로 완성합니다. 센불로 계속 끓여 뽀얗게 만드는 백탕이나 초농후 국물과는 정반대의 방식입니다.2

맑다고 해서 맛까지 옅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닭과 어패류, 향미채소의 맛을 겹겹이 쌓아 복잡한 풍미를 만들되, 겉모습만 투명하게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맑은 국물은 별거없어보여도 속은 알찹니다.

담려계는 한때 유행했던 옛 스타일을 단순히 되살린 것이 아닙니다. 미식의 영역에서도 새롭게 평가받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미쉐린 별을 받은 라멘집은 진한 돈코츠 전문점이 아니라 맑은 쇼유 라멘을 내는 츠타였습니다. 츠타는 국산 통닭과 향미채소로 낸 국물 위에 어개(魚介) 다시를 겹쳐 맛을 만들었습니다.19

맑은 국물을 더욱 극단적으로 다듬은 사례도 있습니다.

프렌치 경력을 지닌 셰프가 연 긴자 하치고는 닭과 생햄, 조개, 향미채소의 감칠맛을 겹쳐 투명한 콘소메 같은 국물을 완성했습니다. 긴자 하치고는 미쉐린 도쿄 가이드에서 2023년 별 하나, 2024년 빕구르망을 받았습니다.20

담려계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무화조(無化調)입니다. 일반적으로 화학조미료와 첨가물을 쓰지 않고 천연 재료만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21

실제로 미쉐린 도쿄 셀렉션에도 무화조와 맑은 청탕을 앞세운 라멘집이 여러 곳 포함되어 있습니다.22

다만 오해해서는 안되는게, 무화조는 법적으로 정해진 공식 규격이 아닙니다. 업계와 매체에서 사용하는 마케팅용어에 가깝고, 무화조라는 이유만으로 맛이나 건강 면에서 반드시 더 낫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21

일본 소비자청은 2022년 가이드라인에서 ‘화학’이나 ‘천연’ 같은 용어를 ‘무첨가’ 또는 ‘불사용’과 함께 강조하면 소비자가 실제보다 더 우수한 제품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23

라멘 업계 내부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나옵니다.

한 라멘 평론가는 감칠맛 조미료의 안전성은 이미 충분히 검토되었으며, 감칠맛 조미료 역시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만큼 미소나 간장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무화조를 곧바로 ‘몸에 좋은 음식’처럼 홍보하는 방식은 비과학적인 이미지를 이용한 마케팅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24

그러니까 무화조는 하나의 조리 선택이나 방향으로 볼 수는 있지만, 자동으로 건강 인증 마크가 붙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편에는 초농후(超濃厚) 국물이 있습니다.

초농후 국물은 지방과 젤라틴을 강하게 유화해 걸쭉하고 매우 진한 질감을 만듭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계백탕(鶏白湯), 즉 토리파이탄입니다.

닭뼈와 닭발, 통닭을 센불에 오랫동안 끓이면 콜라겐이 젤라틴으로 바뀌어 국물에 녹아듭니다. 젤라틴은 기름 입자를 감싸 국물에 농도와 점성을 더하고, 면에 진한 맛이 잘 붙도록 만듭니다.25

이런 진한 국물에는 저가수(低加水) 면이 잘 어울립니다.

저가수 면은 반죽에 들어가는 물의 비율이 낮은 면으로, 대략 30~35% 정도를 기준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26 물이 적게 들어가면 코시, 즉 면의 탄력이 강해지고 씹는 맛도 선명해집니다.

덕분에 국물이 아무리 진해도 면의 존재감이 쉽게 묻히지 않습니다.26

물이 적은 저가수 면과 물이 많은 다가수 면의 굵기·식감·국물 궁합을 비교한 그림

니보시 라멘도 한 방향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례입니다.

전통적인 육수에서는 멸치 머리와 내장에서 나오는 쓴맛과 아린 맛을 잡미로 보고 줄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니보시 라멘은 이런 맛을 오히려 개성으로 살려 의도적으로 남깁니다.

멸치 성분이 강하게 우러난 국물은 회색으로 탁해지는데, 겉모습이 시멘트처럼 보인다고 해서 세멘트계라는 이름까지 붙었습니다.27

맛의 개성을 살리다 보니 이름도 비주얼도 상당히 직관적인편입니다.

츠케멘과 마제소바는 라멘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면을 진한 국물에 찍어 먹거나, 국물 없이 타레와 기름에 비벼 먹는 방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조리법과 재료가 달라지면서 라멘의 경계도 함께 넓어졌습니다.

라멘은 더 이상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음식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츠케멘(つけ麺)은 면과 진한 국물을 따로 내고, 면을 국물에 조금씩 찍어 먹는 방식입니다.

그 원류는 1955년 나카노의 한 가게에서 종업원 식사로 먹던 방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삶고 남은 면을 모아 별도의 국물에 담가 자루소바처럼 먹던 것이 단골손님에게 알려졌고, 이후 정식 메뉴로 발전했습니다.28

현재 이 가게는 츠케멘의 원조로 불립니다.

츠케멘에 물이 많이 들어간 다가수 면이 자주 쓰이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국물에 완전히 잠겨 나오는 일반 라멘과 달리, 츠케멘은 면 자체의 향과 식감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표면이 매끄럽고 탄력이 부드러운 다가수 면은 진한 소스 같은 국물과 균형을 잡아줍니다.29

국물을 아예 덜어낸 갈래도 있습니다.

아부라소바(油そば)는 그릇 바닥에 깔린 타레와 기름을 면에 비벼 먹는 방식입니다. 발상지로 자주 언급되는 곳은 1957년 도쿄 무사시사카이에 문을 연 한 가게이지만, 정확한 원조를 두고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30

처음에는 그대로 비벼 먹다가, 중간에 식초를 넣어 산뜻함을 더하고 라유를 넣어 향과 매운맛을 바꾸어 가며 먹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입니다.30

국물은 없지만 맛의 변화는 오히려 더 직접적입니다.

마제소바(まぜそば)는 비교적 최근에 널리 퍼진 갈래입니다.

나고야의 한 가게가 2008년에 만든 국물 없는 비빔면으로, 나고야의 기존 명물인 타이완 라멘에서 갈라져 나온 음식입니다. 매운 다진고기와 극태면, 달걀노른자, 부추, 어분 등을 한데 넣고 강하게 비벼 먹습니다.31

재료가 따로 놀 것처럼 보이지만, 비비는 순간 하나의 맛으로 정리됩니다. 이름부터 먹는 방법까지 꽤 솔직한 라멘입니다.

식물성 라멘은 재료의 경계를 넓힌 또 다른 시도입니다.

돼지와 닭, 어패류를 사용하지 않고도 진한 감칠맛을 만들기 위해 다시마의 글루탐산과 말린 표고의 구아닐산이 만나 감칠맛이 강해지는 원리를 활용합니다.

여기에 여러 종류의 채소 육수를 겹쳐 맛을 쌓고, 국물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 재료를 끓이지 않고 찌는 방식으로 우려내기도 합니다.32

동물성 재료가 빠졌다고 맛까지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감칠맛의 조합을 다른 방식으로 설계한 것입니다.

국물과 면, 타레를 보면 라멘의 계보가 보입니다

국물의 탁도에서 계열을 살피고, 면의 굵기와 가수율로 국물과의 궁합을 확인한 뒤, 타레와 토핑을 통해 구체적인 계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이름은 공식 표준이 아니라 널리 쓰이는 분류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알고 나면 처음 보는 라멘 한 그릇도 몇 가지 단서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볼 것은 국물의 탁도입니다.

국물이 뽀얗게 유화되어 있고 걸쭉하다면 돈코츠나 계백탕 같은 진한 계열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그릇 바닥이 비칠 만큼 맑다면 담려계 쇼유나 맑은 니보시 계열일 가능성이 큽니다.1

다음으로 면을 살펴봅니다.

가늘고 단단한 저가수 면이라면 진한 국물과 빠른 조리를 염두에 둔 조합일 가능성이 큽니다. 수분이 적어 코시가 강하기 때문에 진한 국물 속에서도 면의 맛과 식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26

반대로 표면이 매끄럽고 수분감이 느껴지는 다가수 면은 맑은 국물이나 츠케멘과 잘 어울립니다.29

그다음에는 타레와 향미유, 토핑을 봅니다.

굵은 면 위에 시금치와 김, 차슈가 올라가 있고 닭기름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이에케이 계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17

그릇 위에 콩나물과 양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두툼한 차슈와 콜 문화가 함께 보인다면 지로계에 가깝습니다.18

실제 라멘은 여러 지역과 유파의 특징이 섞여 있는 경우도 많고, 어느 한 범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 예외도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 그릇을 억지로 어느 칸에 밀어 넣기보다는 국물과 면, 타레가 서로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라멘을 오래 좋아하다 보면 결국 한 그릇은 재료와 역사, 지역과 가게의 선택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뽀얀 국물 하나에도 이유가 있고, 가는 면 한 가닥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맛있어서 먹던 라멘이 어느 순간 작은 계보도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진한 돈코츠 국물과 정통 라멘의 결이 궁금하시다면, 범계 우마이식당에서 한 그릇으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Footnotes

  1. 라멘바틀 — 라멘의 유화란? 국물이 백탁되어 진해지는 구조 — 물과 기름이 잘게 섞여 국물이 뽀얗게 탁해지는 유화의 원리와 가수율별 면 상성. 2

  2. 하야카와제면 — 담려계 라멘이란? — 약 80도에서 우린 맑은 청탕 국물의 정의와 백탕·초농후 계열과의 대비. 2

  3. 소학관 사라이 — 알려지지 않은 라멘의 역사 — 메이지기 요코하마 중화가의 남경소바 상업화와 라멘의 초기 성립.

  4.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 라페디아 — 일본 라멘의 역사 — 1910년 아사쿠사 라이라이켄 개업과 돼지뼈·닭뼈 국물에 간장 타레를 쓴 초기 라멘. 2 3

  5. 소학관 사라이 — 알려지지 않은 라멘의 역사 — 전후 암시장·야타이를 통한 라멘의 서민식 정착과 전문점 등장.

  6.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 라페디아 — 일본 라멘의 역사 — 1958년 치킨라멘 발매와 라멘이라는 호칭의 전국 확산. 2

  7. 닛신식품 — 안도 모모후쿠 크로니클(공식) — 1958년 치킨라멘·1971년 컵누들 발매 연혁.

  8.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 라페디아 — 삿포로 라멘 — 라드로 국물을 봉하는 방식, 중간 굵기 곱슬면, 미소 라멘 효시(1955년경 개발·1961년 메뉴화). 2 3 4

  9. VISIT HOKKAIDO — 삿포로 라멘 특집(공식) — 웍에 야채를 볶아 국물·미소 타레와 합치는 삿포로식 원형 조리법.

  10. 크로스로드 후쿠오카 — 돈코츠 라멘(후쿠오카현 관광연맹 공식) — 돼지뼈를 오래 끓여 얻는 백탁 국물, 극세 스트레이트 면, 카에다마·면 굳기 문화. 2

  11. 크로스로드 후쿠오카 — 후쿠오카 면 특집(공식) — 1947년 구루메 야타이에서 과다 가열로 백탁 돈코츠가 나온 발상 전승.

  12. 크로스로드 후쿠오카 — 후쿠오카 면 특집(공식) — 나가하마 시장 노동자를 위한 극세 면과 카에다마 방식의 유래.

  13. 크로스로드 후쿠오카 — 후쿠오카 면 특집(공식) — 하리가네·바리카타·카타 등 면 굳기 지정 문화와 하카타 사투리 '바리'.

  14. 기타카타 관광물산협회 — 기타카타 라멘(공식) — 넓적한 곱슬면(숙성 다가수면)과 아침 라멘 문화.

  15. 닛폰닷컴 — 후쿠시마 아이즈 기타카타 라멘 — 니보시·돼지뼈 다시의 담백한 쇼유와 아사라 문화. 2 3

  16. 일호점 — 이에케이 총본산 요시무라야 — 1974년 요코하마 창업, 돼지뼈·닭뼈 국물에 간장 타레와 닭기름을 더한 돈코츠 쇼유.

  17. 일호점 — 이에케이 총본산 요시무라야 — 굵은 스트레이트 면, 시금치·차슈 토핑, 테이블 조미료로 맛을 조절하는 문화. 2 3

  18. 앳다임(소학관 발행) — 지로계 라멘이란? — 1968년 미타 라멘지로 원류, 기름진 돼지뼈 국물·극태면·산더미 야채와 콜 주문. 2 3

  19. 닛폰닷컴 — 미쉐린 가이드가 라멘을 인정한 이유 — 세계 최초 미쉐린 별 라멘이 맑은 쇼유 전문점 츠타였다는 사실.

  20. 닛폰닷컴 — 긴자 하치고, 프렌치 출신 점주의 혁신적 라멘 — 투명한 콘소메형 국물과 2023년 별·2024년 빕구르망 수록.

  21. 쿡핏 라멘 용어집 — 무화조(무첨가)란 — 화학조미료·첨가물 무첨가라는 통용 정의와 규격이 아니라는 한계. 2

  22. 파비 — 미쉐린 도쿄 2024 빕구르망 라멘점 소개 — 무화조와 맑은 청탕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미쉐린 셀렉션 가게들.

  23. 일본 우마미조미료협회 — 소비자청 식품첨가물 불사용 표시 가이드라인 해설 — '화학·천연' 표시가 소비자를 오인시킬 우려가 있다는 소비자청 가이드라인 인용.

  24. 야마지 리키야 — 라멘에 화학조미료를 쓰는 것은 나쁜 일인가(야후 익스퍼트) — 무화조를 건강 세일즈로 삼는 마케팅에 대한 평론가 비판.

  25. 라멘바틀 — 라멘의 유화란? — 계백탕에서 콜라겐이 젤라틴으로 변해 기름을 감싸며 국물을 걸쭉하게 만드는 유화 원리.

  26. 쿡핏 — 저가수 면 만드는 법 — 대략 30~35%의 저가수 면이 강한 코시로 진한 국물에서 존재감을 내는 이유. 2 3

  27. 닛신제분 창·식클럽 — 깊은 니보시 라멘의 세계 — 멸치 머리·배의 쓴맛을 개성으로 살린 극단화와 세멘트계 명칭.

  28. 에이스콕 — 히가시이케부쿠로 다이쇼켄의 역사(공식) — 1955년 종업원 식사에서 나온 모리소바가 츠케멘 원조로 알려진 경위.

  29. 라멘바틀 — 가수율별 면 상성 — 다가수 면이 매끄럽고 투명감이 있어 담려계·츠케멘에 맞는다는 상성. 2

  30. 파비 — 아부라소바 발상 노포 친친테이 — 1957년 무사시사카이 노포와 식초·라유로 맛을 바꿔 먹는 방식(발상점은 여러 설). 2

  31. 라지토피(라디오간사이) — 타이완 마제소바의 발상은 나고야 — 2008년 나고야에서 나온 국물 없는 비빔면과 타이완 라멘에서의 파생.

  32. 요리통신 — 멘야무사시의 비건 쇼유 라멘 — 다시마 글루탐산과 표고 구아닐산의 감칠맛 상승효과를 축으로 한 식물성 국물.